
이윤희 캐나다 노바밸리 한인회장
<11월의 의미>
11월이다.
약간의 충격이 있다. 달력을 뜯어내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매달려 있는 두 개의 잎새, 그것을 보는 것처럼 벽에서 떨고 있는 올해의 남은 두 달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불꽃처럼 타버린 10월. 풍성했던 그날의 덧없음을 아쉬워하기도 전에 이제 들리는 것은 낙엽의 장송곡(葬送曲).
세월이란 이렇게 빠르기도 하다는 것을 가르치며 11월은 시작된다.
자신을 태워 새날을 암시하는 미래(未來)에 대한 순교자(殉敎者)다.
가을과 겨울의 징검다리를 놓아가면서 아무런 의미(意味)도 없이 죽어가는 것이 11월인지도 모른다.
지금 서서히 그 죽음은 시작되고 있다.
‘헤르만 헤세’도 11월의 죽음을 이렇게 애상(哀喪)했다.
온갖 것은 이제 뒤덮이고 퇴색하려 합니다/ 안개 낀 나날이 불안과 근심을 깨어줍니다/ 폭풍이 불어제친 밤이 지나면 아침엔 얼음소리가 납니다/ 이별이 울고 세상은 죽음에 가득 차 있습니다/그대여 죽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고 그대 몸을 맡기시라/ 죽을 수있음은 성스러운 지혜입니다/ 죽음에 준비를 하시라/ 아껴감으로써 / 그대는 보다 더 높은 생명에 들어 서려니.....
세월(歲月)이 무엇인지 알면서부터 우리는 괴로움을 배운다. 초조와 불안 공포같은 것도 함께 익혀 나간다.
아무도 세월은 붙잡지를 못한다. 물이 두 번 흘러내리지 않는 것과 같다. 누구도 같은 흐르는 시냇물에 두 번 발을 적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란 모든 사람을 슬프게만 하지는 않는다. 덧없어 하는 자에게만 회한(悔恨)을 안겨준다.
물론 11월은 죽음을 예고한다. 그렇지만 다른 것도 적시한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매서운 북풍(北風), 첫눈, 살얼음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보내면서도 그 속에 한가닥 재생(再生)의 음율(音律)을 실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11월은 말하자면 죽음에 대비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달이기도 하다. 세월이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자락을 펴는 달이다.
시간(時間), 세월 이런 것은 결국 만인(萬人)의 재산(資産)이라 할 수있다. 성공한다는 것은 이것을 잘 이용한다는 뜻이다.
행복한 사람은 세월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한다는 말도 같은 뜻이다.
시간과 연륜이 파묻혀 가는 것을 슬퍼하기 전에 낙엽(落葉)의 의미가 결코 허무(虛無)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조락과 죽음에 대비하지 않는 자는 11월을 슬퍼할 자격도, 노래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