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에 나무와 풀이 있느냐가 노년기 인지 건강과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주거지 인근의 녹지 환경이 치매 발생 위험과 연관성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특히 집에서 반경 100m 이내에 형성된 녹지 공간에서 이러한 관계가 관찰되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연환경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와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공동 연구진은 10월 20일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병과 치매》에 주거지 주변 녹지와 치매 발생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고령층의 뇌 건강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살펴봤다.
이번 연구는 약 10년 가까운 장기 관찰을 통해 주거 환경과 치매 발생의 관계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연구 대상은 스웨덴 노화·돌봄 연구(SNAC)에 참여한 60세 이상 성인 2,993명이다. 연구진은 이들을 최대 16년 동안 추적했으며, 평균 관찰 기간은 9.7년이었다. 전체 참여자 가운데 421명, 약 16%가 관찰 기간에 치매 진단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주거지 주변의 녹지 수준은 위성 영상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측정했다. 식물의 잎과 식생이 지표면에 얼마나 분포하는지를 추정하는 정규화 식생 지수(NDVI)를 적용한 것이다. 연구진은 치매 진단 이전 5년 동안의 평균 녹지 지수를 산출해 분석에 활용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공원이나 숲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식생의 분포 정도를 수치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집과 가까운 녹지 환경에서 나타난 통계적 연관성이었다. 주택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이내의 녹지 지수가 0.18 높아질 때마다 치매 발생 위험이 약 21%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주거지와 인접한 자연환경이 고령층의 건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만 녹지를 측정하는 범위를 넓혔을 때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반경 250m와 500m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치매 발생 위험과 녹지 수준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활권 전체의 녹지 규모뿐 아니라 주택과 직접 맞닿은 가까운 환경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별에 따라 녹지 환경과 치매 발생 위험 사이의 관계가 다르게 나타난 점도 주요 분석 결과다. 여성 참여자의 경우 위험비가 0.69로 나타나 녹지 수준이 높을수록 치매 발생 위험이 약 31% 낮은 연관성을 보였다. 반면 남성 참여자의 위험비는 0.93으로 분석됐으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 정확한 원인은 이번 연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성별에 따른 생활 방식이나 주거 환경, 자연 공간을 이용하는 빈도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향후 연구를 통해 성별에 따른 환경적 요인과 건강 결과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자연환경이 신체와 정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대표적으로 녹지 공간은 스트레스 부담을 낮추고 정신적인 안정감을 높이는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연환경에 대한 접근성이 높으면 수면의 질이나 심리적 상태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신체 활동과 사회적 관계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다. 집 가까이에 산책할 수 있는 녹지가 있다면 외부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걷기와 같은 신체 활동은 물론 이웃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생활환경의 변화가 뇌 건강과 관련될 수 있는 경로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녹지가 치매를 예방한다는 확정적인 근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연구진은 녹지 환경과 치매 발생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을 확인했을 뿐, 녹지가 치매를 직접적으로 억제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스트레스 감소와 수면 개선, 신체 활동 증가 등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경로 역시 이번 연구에서 직접 검증하지 않았다.
연구 대상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참여자들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도시 주민으로,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속한 집단이었다. 따라서 다른 국가나 지역, 소득 수준과 주거 형태가 다른 인구집단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지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노년기 뇌 건강을 둘러싼 논의가 개인의 생활 습관과 의료적 관리에서 주거환경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집 가까이에 존재하는 자연환경이 고령층의 건강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앞으로 도시 개발과 주거지 정비 과정에서 녹지 접근성을 고려하는 정책적 접근이 중요해질 수 있다. 나무와 풀이 있는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쾌적한 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고령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환경적 과제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